컴퓨터의 역사
이 책에서 배운 것들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았다. 계산을 기계에 맡기려던 사람들의 꿈은 수백 년 전 톱니바퀴에서 시작해, 방 하나를 채우던 진공관 기계를 거쳐, 손톱만 한 칩에 수백억 개의 스위치를 새기는 오늘에 이르렀다. 이 장은 그 이야기를 따라가며, 앞 장에서 배운 개념이 언제, 왜 등장했는지 연결한다.
- 기계식 계산기에서 전자식 컴퓨터, 트랜지스터, 집적 회로로 이어지는 흐름을 설명한다.
- 무어의 법칙이 무엇이며 실제 칩들이 그 선을 어떻게 따라왔는지 그래프로 확인한다.
- 옛 컴퓨터와 오늘의 컴퓨터가 같은 일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비교해 본다.
- 개인용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 AI가 컴퓨터의 쓰임을 어떻게 바꿨는지 안다.
한눈에 보는 연대표
톱니바퀴의 시대: 계산을 기계에 맡기려는 꿈
1642년 열아홉 살의 블레즈 파스칼은 세금 계산에 지친 아버지를 위해 톱니바퀴로 덧셈과 뺄셈을 하는 기계를 만들었다. 톱니 하나가 한 바퀴를 돌면 옆 톱니를 한 칸 미는 방식은 3장에서 본 덧셈기의 올림(carry)과 같은 생각이다.
19세기 영국의 찰스 배비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해석 기관(Analytical Engine)을 설계했다. 숫자를 기억하는 “저장소”와 계산하는 “공장”을 나누고, 구멍 뚫린 카드로 명령을 바꿀 수 있게 했다. 저장소는 메모리, 공장은 CPU다. 증기 기관 시대에 이미 컴퓨터의 구조를 그린 셈이다. 기계는 완성되지 못했지만, 수학자 에이다 러브레이스는 1843년 이 기계로 베르누이 수를 계산하는 절차를 글로 남겼다. 이것이 흔히 세계 최초의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에이다는 이 기계가 숫자뿐 아니라 음악 같은 기호도 다룰 수 있으리라 내다봤다. 2장의 “모든 것은 숫자로”라는 생각이다.
전기로 계산하다: 진공관과 프로그램 내장
1936년 앨런 튜링은 아주 단순한 상상의 기계, 즉 테이프 위의 기호를 읽고 쓰며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튜링 기계(Turing machine)로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정의했다. 그리고 규칙표 자체를 테이프에 적어 넣으면 한 기계가 어떤 계산이든 흉내 낼 수 있음을 보였다. 오늘날 모든 범용 컴퓨터가 이 생각 위에 서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포탄 궤도 계산과 암호 해독을 위해 전기로 움직이는 계산기가 만들어졌다. 1946년 미국에서 공개된 ENIAC은 진공관(vacuum tube) 약 18,000개로 만든 무게 30톤의 기계로, 1초에 약 5,000번 덧셈을 했다. 진공관은 3장의 트랜지스터와 같은 일을 하는 전기 스위치지만, 전구만 한 크기에 뜨겁고 자주 타 버렸다. 게다가 프로그램을 바꾸려면 사람이 케이블을 일일이 다시 꽂아야 했다.
이 불편을 해결한 것이 1945년 존 폰 노이만 등이 정리한 프로그램 내장 방식이다. 명령도 데이터처럼 메모리에 넣어 두고 CPU가 하나씩 꺼내 실행하는 것, 바로 4장에서 장난감 CPU로 해 본 방식이다. 이후의 거의 모든 컴퓨터가 이 구조를 따른다.
1947년 하버드 대학의 계산기 Mark II가 오작동하자, 그레이스 호퍼의 팀은 릴레이 사이에 낀 나방을 찾아냈다. 그들은 나방을 작업 일지에 테이프로 붙이고 “실제로 발견된 첫 버그(bug)”라고 적었다. “버그”라는 말 자체는 그전부터 쓰였지만, 이 일지는 지금도 박물관에 남아 있다. 호퍼는 훗날 사람이 읽기 쉬운 말로 프로그램을 쓰고 컴파일러로 번역하는 생각(13장)을 앞장서서 밀어붙였다.
트랜지스터와 칩: 무어의 법칙
1947년 미국 벨 연구소에서 트랜지스터가 발명됐다. 진공관과 같은 스위치 역할을 하면서 훨씬 작고, 차갑고, 오래갔다. 1958~1959년에는 잭 킬비와 로버트 노이스가 트랜지스터 여러 개와 배선을 실리콘 조각 하나에 함께 만드는 집적 회로(IC, integrated circuit)를 내놓았다. 이제 회로를 손으로 납땜하는 대신 사진을 찍듯 한꺼번에 “인쇄”할 수 있게 됐다.
1965년 고든 무어는 칩 하나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 수가 해마다 두 배씩 늘고 있다고 관찰했고, 1975년에 이를 “약 2년마다 두 배”로 고쳤다. 이것이 무어의 법칙(Moore's law)이다. 자연법칙이 아니라 업계가 스스로 세운 목표에 가까웠지만, 놀랍게도 50년 가까이 지켜졌다. 1971년 인텔의 첫 마이크로프로세서 4004에는 트랜지스터가 2,300개 있었다. 오늘날 AI용 칩에는 2,000억 개가 넘게 들어간다.
칩 하나의 트랜지스터 수
2년마다 두 배가 되는 일이 20년 동안 계속되면 몇 배가 될까?
20년 동안 두 배가 몇 번 일어날까? 2를 그 횟수만큼 곱해 보자.
모두의 컴퓨터: 개인용 컴퓨터와 그래픽 화면
1970년대까지 컴퓨터는 회사나 대학이 한 대를 들여 여러 사람이 나눠 쓰는 값비싼 장비였다(8장의 시분할이 이때 나왔다).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싸지자 1970년대 후반 Apple II 같은 개인용 컴퓨터가 등장했고, 1981년 IBM PC가 나오면서 사무실 책상마다 컴퓨터가 놓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3년 삼성이 64Kb DRAM 개발에 성공하며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었고, 오늘날 한국은 메모리(6장)와 AI용 고대역폭 메모리 분야를 이끄는 나라가 됐다.
또 하나의 혁명은 화면이었다. 명령어를 글자로 입력하던 방식 대신, 마우스로 아이콘과 창을 누르는 GUI(Graphical User Interface)가 1970년대 제록스 연구소에서 연구되고 1984년 매킨토시, 1990년대 윈도우를 통해 퍼졌다. 컴퓨터를 배우지 않은 사람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화면 가득한 픽셀을 그리기 위해 그래픽 전용 칩이 발전했고, 그것이 12장의 GPU로 이어진다.
연결된 세상: 인터넷, 웹, 스마트폰
1969년 미국의 대학 몇 곳을 잇는 ARPANET이 처음으로 패킷을 주고받았다(10장). 1983년에는 오늘날의 TCP/IP로 바뀌어 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하나로 묶는 “인터넷”이 됐다. 1989~1991년 유럽 입자물리연구소(CERN)의 팀 버너스리는 링크로 문서를 잇는 월드 와이드 웹과 HTML, HTTP, 첫 웹 브라우저를 만들었다(11장). 그는 이 기술에 특허를 걸지 않고 모두에게 공개했다. 1990년대 말 우리나라는 초고속 인터넷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퍼진 나라 중 하나가 됐다.
2007년 터치스크린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컴퓨터는 주머니 속으로 들어왔다(18장). 항상 인터넷에 연결된 수십억 대의 기기가 생기자, 데이터를 모아 처리하는 거대한 데이터센터(20장)가 필요해졌다.
AI의 시대
인공지능이라는 말은 1956년에 처음 쓰였지만, 오랫동안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전환점은 세 가지가 동시에 갖춰진 2010년대였다. 인터넷이 쌓아 준 엄청난 양의 데이터, 게임용으로 발전한 GPU의 병렬 계산(12장), 그리고 깊은 신경망을 학습시키는 방법(17장)이다. 2012년 GPU로 학습한 신경망이 사진 분류 대회에서 기존 방법을 크게 앞섰고, 2016년 3월 서울에서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4승 1패로 이기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2017년에 발표된 트랜스포머 구조는 오늘날 대형 언어 모델의 바탕이 됐고, 2022년 말부터 대화형 AI가 누구나 쓰는 도구가 됐다.
돌아보면 컴퓨터의 역사는 같은 질문의 반복이다. “스위치를 더 작고 빠르게, 더 적은 전기로, 더 많이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스위치들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책의 1장에서 본 입력·처리·저장·출력의 구조는 ENIAC에서 오늘의 AI 칩까지 변하지 않았다. 바뀐 것은 규모, 그리고 그 규모가 열어 준 가능성이다.
타임머신 계산기: 그 시절 컴퓨터로 이 일을 하면
핵심 정리
- 배비지의 해석 기관은 저장소(메모리)와 공장(CPU)을 나눈 설계였고, 에이다 러브레이스는 그 기계를 위한 첫 프로그램을 썼다.
- 튜링은 계산을 정의했고, 진공관으로 만든 ENIAC 이후 프로그램 내장 방식이 컴퓨터의 기본 구조가 됐다.
- 트랜지스터와 집적 회로가 스위치를 작고 싸게 만들었고, 무어의 법칙에 따라 칩 속 트랜지스터는 약 2년마다 두 배로 늘었다.
- 개인용 컴퓨터와 GUI가 컴퓨터를 모두의 것으로, 인터넷·웹·스마트폰이 모두를 연결된 존재로 만들었다.
- 데이터, GPU, 신경망 학습법이 만나 오늘의 AI 시대가 열렸다.
확인 퀴즈
배비지의 해석 기관에서 “저장소”와 “공장”은 오늘날 무엇에 해당할까?
ENIAC 같은 초기 전자식 컴퓨터가 스위치로 쓴 부품은?
“프로그램 내장 방식”의 핵심은?
무어의 법칙이 말하는 것은?
2010년대에 AI가 급격히 발전한 배경으로 거리가 먼 것은?